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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호사설 제4권 Edition of Original Text  Image of Original Text  Open Wind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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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물문(萬物門)
거채(居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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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孔子)가, “장무중(臧武仲)은 채(蔡)를 간직했다.” 하였는데, 그에 대해 해설자는 식화지(食貨志)의, “원귀(元龜)를 채(蔡)라 한다.”는 말을 인용하였다. 나는 《가어(家語)》를 상고하니, 공자가 칠조빙(漆彫憑)에게, “너는 장문중(臧文仲)ㆍ무중(武仲)ㆍ유자용(孺子容)을 섬겼으니, 그 세 대부(大夫) 중에 누가 제일 어질더냐?”고 물으매, 칠조빙은, “장씨(臧氏)의 집에 점치는 거북이 있는데 이름을 채라 합니다. 문중은 3년에 한번씩 점을 치고, 무중은 3년에 두 번씩 점을 치며, 유자용은 3년에 세 번씩 점을 쳤습니다.”고 대답하였다. 그 주(注)에, ‘거북이 채(蔡) 나라 지방에서 나는 까닭에 그 지명에 따라 이름한 것이다.’ 하였으니, 이는 문세(文勢)로 보아, 채란 것이 만약 원귀의 이름이었다면, 마땅히 이와 같이 해설하지 않았을 것이다. 혹 장씨가 간직한 거북의 이름을 채라 했다 하여, 후세에서 그대로 따르게 되었던 것인가?
《좌전(左傳)》 소공(昭公) 25년조에, “장회(臧會)누구(僂句)를 훔쳐 점을 치면서, ‘누구는 나를 속이지 않았다.’고 했다.” 하였으니, 이로 본다면, 거북에겐 또 누구란 이름도 있다.
또 〈공자가 장무중을〉 참람하다 한 것은, 〈그가 거북 기르는 집을 만들 때〉 동자기둥[梲]에 산을 그리고 공포(拱包)에 마름[藻]을 새겼었던 것을 지적했을 뿐이고, 거북 간직한 일을 지적한 것은 아니었다. 만약 채를 간직한 것만을 지적했다면, 장씨 세 사람 모두가 참람한 짓을 한 것인데, 유독 무중만을 거론했겠는가?
어떤 이는, “원귀는 천자(天子)가 사용하는 거북인 까닭에 공자가 나무란 것이다.” 하나, 이것 또한 그렇지 않은 듯싶다.

[주C-001]거채(居蔡) : 거북을 간직함.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 편에 의하면, 노(魯) 나라 대부(大夫) 장문중(臧文仲)이 거북 간직하는 집을 너무 호화스럽게 꾸미니, 공자는, “장문중이 거북을 간수하되, 공포에 산을 그리고 동자기둥에 마름을 새기니, 어떻게 안다고 하랴[臧文仲居蔡 山節藻梲 何如其知也].”라고 나무랐던 것이다.
[주D-001]장무중(臧武仲) : 《논어》에 따르면, 무(武)자는 문(文)자의 잘못인 듯함.
[주D-002]식화지(食貨志) : 한(漢) 나라 반고(班固)가 지은 《한서(漢書)》 중의 한 편명.
[주D-003]원귀(元龜) : 큰 거북. 옛날 천자가 즉위할 때 원귀로 점을 쳤다 함.
[주D-004]가어(家語) : 《공자가어(孔子家語)》. 공자의 언행을 당시 여러 제자들이 듣고 본대로 기록한 글로서 공자의 후손 공안국(孔安國)이 전수했다 하여, 《가어》라고 했다 함.
[주D-005]칠조빙(漆彫憑) : 칠조는 성, 빙은 이름. 자는 자개(子開), 공자의 제자.
[주D-006]소공(昭公) : 노 나라 임금. 이름은 주(裯).
[주D-007]장회(臧會) : 노 나라 대부. 그는 장소백(臧昭伯)의 거북을 훔쳐 늘 거북점을 치면서, 점괘가 흉하면 버리고 길하면 꼭 그대로 따라 하였다. 나중에 장소백이 죽은 후에 그의 뒤를 잇게 되자, 그는, “누구는 나를 속이지 않았다.”고 말하며 기뻐했음.
[주D-008]누구(僂句) : 거북 이름. 일설에는 거북의 산지명이라고도 함.

ⓒ 한국고전번역원 ┃ 김철희 (역) ┃ 1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