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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호사설 제7권 Edition of Original Text  Image of Original Text  Open Wind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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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문(人事門)
과천합일(科薦合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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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보이는 것은 장차 등용하려는 것이다. 과거를 보여 놓고 등용하지 않는다면 과거를 보인 의도가 어디에 있겠는가?
우리나라 제도에 자(子)ㆍ오(午)ㆍ묘(卯)ㆍ유(酉) 네 해로 식년(式年)을 삼아, 문과(文科)에 33인, 생원과(生員科)와 진사과(進士科)에 각각 1백 명씩이나 많이 뽑는다.
그 입사(入仕)와 치사(致仕)를 대략 30년으로 잡으면, 30년 동안 2천 3백 30명이 된다. 지금 내직(內職)은, 병조(兵曹)의 소관을 제외하고, 이조(吏曹)가 주망(注望)하는 것이 4백 자리가 못 되고, 외직(外職)도 이와 맞먹는데, 무과(武科)ㆍ선음(先蔭)ㆍ천문(薦聞)ㆍ유품(流品) 따위 3백 자리가 또 거기에 끼어 있고 보면, 나머지가 5백여 자리에 불과하다. 이 5백여 자리로 2천 3백 30명을 골고루 대우할 수 없는 형편이다. 그러므로 생원ㆍ진사의 유는 오직 귀척을 친근히 하여야 벼슬을 얻고, 비록 문과라도 끌어주는 힘이 없으면 한 번 체직된 뒤에는 다시 진출하지 못한다.
요즈음 항간에는, 벼슬한 사람도 백성도 아닌 생원ㆍ진사로 늙어 죽는 자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그래도 목을 늘이고 침을 흘리면서 나머지 벼슬자리나마 얻으려고 기대하여, 농묘(隴畝)에 처한 자신의 분수를 편히 여기지 못하는가 하면, 그의 자손 역시 그 그늘을 빙자하여 민역(民役)을 면하게 되니 그 피해의 한 가지요, 간혹 입사(入仕)하는 자도 재물을 바치거나 아니면 아첨하여 사자(士子)의 습속을 해치고, 행정(行政)에 있어서는 남의 청탁을 감히 어기지 못하며, 치민(治民)에도 부극(掊克)을 면치 못하여 남에게 잘보이고 자신의 만족을 채우려 하니 그 피해의 두 가지요, 인재를 등용함이 너무 용잡하고 함부로 점거함이 너무 지나치기 때문에 서로 본뜨면서 심지를 곤두세우니, 마음이 어지럽고 이목이 현미한 자는 조급히 움직이지 않는 이 없어, 혹은 재물로 취하고 혹은 붓 끝을 이용하여 농사일을 버리고 도로에 분주하다가 가문을 망치는 지경에 이르고 있으니, 그 피해의 세 가지이다.
지금은 더욱 심한 것이 있다. 식년(式年) 외에도 과거의 명칭이 자못 10여 가지나 있어 3년 동안에 문과(文科)가 1백여 명에 이르기까지 한다. 조정에서는 오로지 위안으로 목적을 삼고 있으나 실은 원망을 사는 것이 이에 더 심할 수 없다. 이미 두루 다 즐겁게 해 줄 수 없는 것이라, 일은 같은데 자취가 다를 수 있으며, 저 사람은 얻는데 나는 잃게 되는 것이니 그 누가 달게 받아들이겠는가? 힘이 비등해지면 싸우게 되고 지위가 핍박되면 시기하게 된다. 그리하여 좌우로 엿보되 이로운 구멍은 오직 하나뿐인데, 그 구멍을 뚫고 들어오는 사람이 십중팔구이니, 서로 패가 갈리게 되는 그 형세는 이상할 것이 없다. 요는 적게 선발하면서 정선을 힘쓰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 혹은 뽑아 놓은 사람이 이미 많아서 조처할 도리가 없다고 핑계하나, 이는 소위 7년병에 3년 묵은 쑥을 구하는 격이다. 그것이 그르다는 것을 알았다면 즉시 그만두는 것이 옳은 일이다.
만약에 부득이하다면 한 가지 방법은 있다. 이미 과거에 뽑힌 사람 중에 인재를 가려 뽑고 덕을 숭상하게 하는 방법을 붙여, 육조(六曹)ㆍ경조(京兆) 의장ㆍ차관, 양도 유수(兩都留守)ㆍ팔도 감사(八道監司)로 하여금 3년마다 각각 문과(文科) 몇 명씩을 천거케 하는 동시 그들의 전공까지 각각 표기하여 올리게 한 뒤에, 주상(主上)과 정부관(政府官)이 천거한 추천서를 친히 심사하여 점수를 매겨서 2점 이상을 얻은 문학과 덕행이 있는 사람은 경석(經席)에 끌어들이되 관록(館錄)의 규제는 없앨 것이며, 재능이 있고 사무를 아는 사람은 서정(庶政)을 맡긴다. 그리고 오로지 문벌(門閥)이나 숭상하면서 노는 자는 법으로 금지시키고, 일단 입선(入選)된 뒤에 죄폐(罪廢)를 제외하고는 버려 두는 일이 없게 하여, 몇 해 동안만 이와 같이 하면 거의 해결되리라고 본다.
또 무과(武科)의 부정이 더욱 극심하다. 서ㆍ북(西北)은 궁마(弓馬)를 숭상하는 곳으로서 모두 무과(武科) 출신(出身)인데, 위로는 무장(武將)에 보임되지 못하고 아래로는 졸오(卒伍)에 편성되지 않아 국가에 붙여지지 못하기 때문에, 원한으로 그 일생을 마치게 된다. 이들 역시 3년마다 경술(經術)과 무예(武藝)로 다시 시험을 보여 50~60명을 뽑아 차례로 보직시켜 일정한 규정을 삼고 어기는 예가 없게 한다면 얻지 못하는 자도 감히 칭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수령 방백의 유도 이상의 예와 같이 천망으로 기용한다면 이것이 곧 과천합일의 설이다.

[주C-001]과천합일(科薦合一) : 《類選》 卷4上 人事篇5 治道門2. 《明南樓》 人政 卷17 選人門4 〈科薦歸一〉 人政 卷16 選人門3 〈科薦參用〉.

ⓒ 한국고전번역원 ┃ 성백효 이동환 임정기 장순범 정기태 정연탁 (공역) ┃ 19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