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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호사설 제10권 Edition of Original Text  Image of Original Text  Open Wind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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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문(人事門)
중표혼(中表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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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표(中表) 사이에 혼인하는 것은 선왕(先王)의 제도가 아닌 듯하다. 은(殷) 나라 이전에는 5대가 지난 후에는 서로 혼인하였는데, 주(周) 나라에서는 종법(宗法)을 세운 까닭에 백 세가 지나도 통혼하지 않았으니, 이는 시조묘(始祖廟)가 있기 때문이다. 이성(異姓)이 혈속(血屬)은 아니라 할지라도 사람의 몸은 모혈(母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외조부모에게 소공복(小功服)을 입고, 이성 형제(異姓兄弟)에게도 마찬가지로 소공복을 입는 것인데, 어찌 서로 혼인할 수 있겠는가?
나의 생각에는 주 나라 말기에 규문(閨門)의 난잡한 것이 그냥 풍속으로 되어 다시 금하지 않았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좌전(左傳)》과 《국어(國語)》 같은 모든 서적에도 예(禮)에 의거해서 공공연하게 행해진 사실이 보이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통전(通典)》에 “이모(姨母)의 상사에 처모(妻母)와 같이 시복(緦服)을 입는 것은, 대개 어머니는 그의 자매(姊妹)에게 대공복(大功服)을 입고, 아내는 그의 어머니에게 기년복(朞年服)을 입는 까닭에 중한 것을 따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도 옳지 않다. 내가 아내에게는 기년복만 입고 어머니를 위해서는 3년복을 입으니, 마땅히 이모의 복을 처모보다 더 중하게 입어야 할 것이다. 그 경중은 논할 것 없이 이성 자매(異姓姊妹)에게는 시복을 입게 되었으니, 이미 복이 있다면 이는 족(族)이 되는 것이니 《백호통(白虎通)》에 이른바 ‘구족(九族) 이내의 족속’으로서 혼인하는 일은 더구나 부당하다.
우리나라는 이성(異姓) 친척 사이에 4대를 지나기 전에는 서로 혼인하기를 부끄럽게 여기니, 이는 아름다운 풍속이다. 우리나라가 기자(箕子)가 끼친 교화를 숭상하고 따른 것을 여러 가지로 증거할 수 있으니, 이는 역시 은(殷) 나라 제도가 전해 와서 지금까지 없어지지 않은 것인 듯하다. 중간에 와서 왕씨(王氏)가 난잡하게 한 짓은 신라(新羅) 박ㆍ석ㆍ김(朴昔金) 시대의 풍속을 인습한 데에 불과했고, 그때 항간에서 다 같이 행하던 풍습을 죄다 그렇게 바꾸지 못한 것은 백성들이 기자의 유풍을 지킨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려가 망하고 법은 바뀌어졌으나 오직 외성(外姓) 사이에 혼인하는 것만은 아직까지 한결같으니, 이는 기자가 끼친 교화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주C-001]중표혼(中表婚) : 내외종(內外從) 사이의 혼인.
[주D-001]《통전(通典)》 : 당(唐) 나라 두우(杜佑)가 찬(撰)한 책으로 2백 권인데, 고대로부터 당 현종(唐玄宗)까지의 식화(食貨)ㆍ선거(選擧)ㆍ직관(職官)ㆍ예ㆍ악ㆍ병ㆍ형(刑)ㆍ주군(州郡)ㆍ변방(邊防)의 9개 부문으로 나누어 기록했다.
[주D-002]《백호통(白虎通)》 : 후한(後漢) 장제(章帝)가 여러 학자를 백호관(白虎館)에 모아 놓고 오경(五經)의 동이(同異)를 변정(辨正) 토론케 한 내용을 반고(班固)가 찬집(撰集)한 4권의 책이다.
[주D-003]구족(九族) : 자신을 중심하여 위로 고조(高祖), 아래로 현손(玄孫)까지의 9대의 내외족(內外族)을 가리킨다.

ⓒ 한국고전번역원 ┃ 김철희 (역) ┃ 19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