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href="#"></a>
<a href="#"></a>
 성호사설 제12권 Edition of Original Text  Image of Original Text  Open Window
확대 원래대로 축소
 인사문(人事門)
묘악(廟樂)
[DCI]ITKC_mk_g008_005_2002_10550_XML DCI복사 URL복사

옛날에 사당[廟]마다 신주를 달리하였으니, 가령 천자(天子)가 일곱 사당이면 신주도 일곱이다. 그런데 세차(世次)가 바뀌고 댓수[親]가 멀어져 신주를 옮겨야 할 경우에는 소목(昭穆)의 순서대로 세실(世室)의 한 쪽에 모시며, 또 조종(祖宗)으로서 공이 있거나 덕이 있으면 그 사당을 철훼하지 않으니, 은(殷) 나라의 태무(太戊)ㆍ무정(武丁)과 주(周) 나라의 문왕(文王)ㆍ무왕(武王)의 세실과 선왕(宣王)ㆍ평왕(平王)의 경우가 그러하다.
무릇 제사에는 반드시 연주하는 악장(樂章)이 있어, 그 체협(禘祫 임금이 선조에게 지내는 제사 이름)을 태조(太祖)의 사당에 지내려면 태조 사당의 악장을 사용하며, 시향(時享)의 경우 일곱 사당에 다 제사를 지내더라도 역시 그 사당마다 악장이 각각 따로 있으니, 주송(周頌) 31편을 보면 그 뜻이 분명하다. 사문(思文)은 후직(后稷)의 악장이고, 천작(天作)은 태왕(太王)의 악장이며, 청묘(淸廟)ㆍ유천지명(維天之命)ㆍ옹(雍)은 문왕의 악장이고, 시매(時邁)ㆍ재현(載見)ㆍ무(武)ㆍ작(酌)ㆍ환(桓)은 무왕의 악장이며, 호천유성명(昊天有成命)ㆍ민여소자(閔予小子)ㆍ방락(訪落)은 성왕(成王)의 악장이며, 집경(執競)은 무왕ㆍ성왕 및 강왕(康王)을 칭송한 것인데 아마 성왕의 악장인 듯하나, 그 주(註)에, “무왕ㆍ성왕ㆍ강왕을 제사지내는 시(詩)다.” 했으니, 그 뜻이 분명하지 않다. 왜냐하면, 무왕ㆍ성왕의 덕으로써 강왕의 사당에 흠향한다면 그럴 수 있거니와, 성왕ㆍ강왕의 덕으로써 무왕의 사당에 흠향한다는 것은 그럴 수 없으며, 또 만약에 성왕ㆍ강왕의 신주를 이미 옮겨, 성왕을 문왕의 세실에 부묘(祔廟)하고 강왕을 무왕의 세실에 부묘한다면 다시 어느 곳에서 이 시를 노래하여 향사를 치르겠는가? 이 때문에 뇌( 주송의 편명)에도 문왕ㆍ무왕의 덕을 칭송했으니, 즉 무왕을 향사하는 악장이요 문왕에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 나라의 성왕ㆍ강왕 이후 29대(代)도 향사는 지내면서 악장이 없지 않을 텐데, 그 한때의 제작(制作)이 전할 만한 의의가 없으므로 태사씨(太史氏 역사의 기록을 맡은 관직자)가 전하지 않았거나 성인(聖人 공자를 가리킴)이 깎아 버렸기 때문일까? 뒷세상에 상고할 길이 없다. 그 다른 시에는 후직(后稷)으로부터 문왕의 공렬(功烈)까지 찬탄한 것이 매우 많다. 저 이아(二雅 《시경》의 소아(小雅)와 대아(大雅))는 다 태사(太史)ㆍ소사(小史)가 맡아서 악가(樂歌)를 만든 것인지라, 그 사당에 제사를 지내려면 으레 그 시를 노래하는데, 어찌 이것이 연향에만 사용하는 악장이겠는가? 이는 대부분 체제와 협제의 악장이다.
전대를 두루 고찰해 보건대, 한ㆍ당(漢唐)으로부터 무릇 천하를 소유한 자들이 다 그 세대마다 악장이 다르고, 심지어 요(遼)ㆍ금(金)ㆍ원(元)과 우리 동방 고려에도 그러하다. 다만 명 나라에서는 악장을 달리한 증거가 없으나 역시 합용(合用)한 문자는 보지 못했다.
우리 성조(聖朝)에서도 태조 이하 신주를 옮기지 않기를 결정한 분이 무릇 8대인데, 그 노래와 춤을 각각 따로 할 경우, 혹시 그 일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으로 말하겠지만, 그러나 큰 공업이 있는 분에게 노래로 칭송하는 것은 예(禮)에 있어 당연한 일인지라, 그 찬란한 공덕에 비추어 그냥 있을 수 없는 것이라면 어찌 이것을 창졸히 폐지하겠으며, 또 만약에 조선(祖先)의 악장을 마땅히 후세에 써야 한다면 주 나라의 성왕ㆍ강왕 사이에만 허다한 편(篇)이 있겠는가? 만일 버리지 못할 경우에 버리지 말아야 한다면 또한 버려야 할 경우에 버리는 것도 가하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주송을 보건대, 다 두어 구절에 불과하다. 술잔을 올리는 사이 그 의식이 많으니, 이(소아(小雅) 대아(大雅)) 악장을 사용한다면 미치지 못할 염려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는 매우 많은 편(篇)인지라, 그 전부를 다 연주할 수 없고, 몇 구절만을 골라 사용한다면 마침내 완전한 가사에 결함이 되니, 주송의 체제와 같이 별도로 시가(詩歌)를 만들더라도 행하기에 어려울 것은 없으리라 생각된다. 지금 《오례의(五禮儀)》에 의거하건대, 제1실(室)에 나아가 악가를 연주하되 보태평(保太平)의 악곡과 보태평의 춤으로 하고, 그 다음 각 실에 나아가서는 술잔만을 올리니, 악이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의 시대는 예(禮)도 이미 없어졌는데 악(樂)을 어찌 논할 것인가?

[주C-001]묘악(廟樂) : 종묘(宗廟)에 드리는 풍악.
[주D-001]주송(周頌) : 《시경》 3송(三頌 : 주송(周頌)ㆍ노송(魯頌)ㆍ상송(商頌)) 중의 하나. 주(周) 나라 초기 종묘의 악가로서 대부분 주공(周公)이 정하였는데, 청묘(淸廟)ㆍ유천지명(維天之命)ㆍ유청(維淸)ㆍ열문(烈文)ㆍ천작(天作)ㆍ호천유성명(昊天有成命)ㆍ아장(我將)ㆍ시매(時邁)ㆍ집경(執競)ㆍ사문(思文)ㆍ신공(臣工)ㆍ희희(噫嘻)ㆍ진로(振鷺)ㆍ풍년(豊年)ㆍ유고(有瞽)ㆍ잠(潜)ㆍ옹(雝)ㆍ재현(載見) 유객(有客)ㆍ무(武)ㆍ민여소자(閔予小子)ㆍ방낙(訪落)ㆍ경지(敬之)ㆍ소비(小毖)ㆍ재수(載芟)ㆍ양거(良耟)ㆍ사의(絲衣)ㆍ작(酌)ㆍ환(桓)ㆍ뇌()ㆍ반(盤) 모두 31장으로 되었음.

ⓒ 한국고전번역원 ┃ 이진영 (역) ┃ 1978